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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의 초고도 및 생활 기술

1,500년 전 비잔틴 제국의 공공 주택 시스템, 지금도 적용 가능할까?

by 엠마버스 2025. 4. 16.

서론: 비잔틴 제국의 공공 주택 제도, 지금의 도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일까?

비잔틴 제국은 단순한 중세 왕국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의 동방 계승자로서, 행정력과 도시 관리에 있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시스템을 갖춘 문명 중 하나였다. 특히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수백만 명이 거주하던 초대형 도시로, 복잡한 도시계획과 공공시설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공공 주택 시스템, 즉 오늘날의 사회주택(Social Housing)과 유사한 정책이 등장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서민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과 사회 통합의 역할도 수행했다. 고대 로마의 인술라(Insula) 형태를 계승한 공공 임대 주택은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거나 건설을 주도하고, 특정 계층에게 거주를 허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수도 행정관들이 직접 주택 분배와 관리에 참여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중앙집중형 정책이었다.

이 글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공공 주택 시스템이 어떤 구조로 운영되었는지, 현대 도시 주택 문제 해결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를 심도 깊게 다루고자 한다. 오늘날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 도시의 양극화 현상 속에서 1,500년 전 비잔틴의 모델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대 도시정책의 대안으로 다시 살펴볼 가치가 있다.

 

1. 콘스탄티노플의 도시 구조와 공공 주택 정책의 필요성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인구가 수십만에서 백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이처럼 대규모 인구가 집중된 환경에서는 당연히 주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었다.

도시의 핵심 지역에는 귀족과 부유층이 거주하는 대형 저택과 정원이 있었지만, 외곽이나 중심지 후방에는 서민과 장인, 노예 출신 해방민들이 거주하는 공공 주택 블록이 조성되었다. 이 주택들은 대부분 ‘인술라’의 구조를 계승한 다세대 건물로, 하나의 건물에 여러 세대가 층을 나누어 거주하는 구조였다.

특히 수도 내에서 토지를 임대받거나, 국가로부터 특정 지역 내 거주 허가를 받은 계층에게 주택이 우선 배분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권 보유 여부와 세금 납부 기록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국가가 서민의 주거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행정적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잔틴의 이러한 도시 관리와 주거 정책은 단순한 건물 공급이 아니라, 도시 질서와 사회 구조 유지의 핵심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국가 주도의 건설과 관리 – 비잔틴의 중앙 집중형 주택 운영 방식

비잔틴 제국은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제국이었다. 황제의 권한은 신성과 절대성을 기반으로 했고, 행정 역시 관료 체계와 군주 직속 조직이 운영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공공 주택 역시 중앙정부가 직접 기획하고 관리하는 체계로 운영되었다.

황제는 주요 도심 지역에 국가 소유지를 할당하고, 이 지역에 공공 주택을 건설하도록 지시했다. 건설은 대부분 국영 장인단이나 제국 직속 토목 조직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관료나 군인 계층의 하위 구성원, 상공업 종사자, 세금 기록이 불안정한 계층에게 이들 주택이 분배되었다.

주택 공급의 기준은 단순한 주거 목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거주자는 해당 지역에 대한 병역 의무, 세금 의무, 공공노동 참여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여야 했다. 이를 통해 비잔틴 정부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국가적 통합과 통제를 위한 거점으로서 공공 주택을 활용했던 것이다.

건물 유지보수도 일정 부분 국가가 부담하거나, 공동체 단위로 운영되었으며, 이에 대한 기록은 지방 행정관이 점토판이나 두루마리 문서로 관리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관리 시스템과 문서화 기반의 행정 운영이었다.

 

3. 공공 주택의 사회적 역할 – 정치적 통합과 사회 안정 장치

비잔틴 제국이 공공 주택에 많은 자원과 행정력을 투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주택이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정치적 충성심을 확보하는 수단이자, 사회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기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계층, 군 복무 경험자, 국가 서비스 제공자에게 공공 주택을 우선 배정함으로써, 황제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도무스(Domus)’로 불린 황제의 이름을 딴 공공 주택 구역이 있었고, 이들 지역은 실질적인 국가 통제 하에 있었다. 이는 로마의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 정책과 유사한 구조로, 물리적 공간을 통해 정치적 유대를 형성하는 전략이었다.

또한 주택 단지 내에는 공동 식당, 공용 화장실, 공동 작업장, 목욕시설 등이 설치되어 커뮤니티 기반 생활 방식이 조성되었고, 이는 도시 빈민이나 이주민에게 사회적 소속감을 제공해주었다. 이를 통해 비잔틴은 도시의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고, 각기 다른 출신 계층 간의 융합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공 주택의 사회적 기능은 오늘날 도시 재생과 커뮤니티 중심 개발 모델에서 다시금 참고되고 있다. 비잔틴 제국은 일찍이 ‘주거’의 가치를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통합시킨 것이다.

 

1,500년 전 비잔틴 제국의 공공 주택 시스템, 지금도 적용 가능할까?

4. 현대 적용 가능성 – 비잔틴의 주택 모델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비잔틴 제국의 공공 주택 시스템은 오늘날 도시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 도시들이 직면한 문제 중 상당수는 주거 비용의 상승, 주택 양극화, 무주택자의 증가, 도시 내 계층 분리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공공 주택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비잔틴 제국처럼 국가 주도의 통합형 운영 시스템은 드물다.

현대 사회에서는 시장 중심의 주택 공급이 일반적이며, 정부는 보조금이나 임대 정책으로 제한적으로 개입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근본적인 주거 불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비잔틴의 중앙 집중형 공급, 배분, 관리 방식이 오늘날 사회주택 모델의 참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공공 토지를 확보하고, 해당 지역에 다세대형 공동주택을 건설하여, 일정 기준에 따라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은 비잔틴의 모델과 유사하다. 또한 공동체 기반 운영, 공동 시설 조성, 주민 자치 방식 도입 역시 비잔틴의 커뮤니티 중심 공공 주택 운영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비잔틴 모델의 핵심은 단순한 주택 제공이 아니라, 주거 공간을 통한 사회 안정과 계층 통합의 구조화였다. 이 개념은 고대에서 왔지만, 여전히 도시의 회복력과 공공성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접근일 수 있다.

 

결론: 과거의 주택 정책이 미래 도시의 방향을 제시한다

비잔틴 제국의 공공 주택 시스템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나 역사적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아이디어의 보고다. 이 제국은 주거를 단지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행정·사회 통합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고, 이를 통해 거대한 도시를 수백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오늘날 주택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을 위한 공간, 사회의 연결을 위한 장치, 그리고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물이 되어야 한다. 비잔틴 제국은 그 해답을 이미 1,500년 전에 제시했다.

공공 주택이 단지 건물이 아닌 사회적 기반 시설로 기능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잔틴 제국처럼 복잡한 도시 안에서도 평등하고 안정적인 삶의 질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단순히 박물관에 가두지 말고, 정책의 실험실로 활용할 때, 도시는 진정한 진화를 이룰 수 있다.